아티스트노트

에너지의 떨림이 공기로 전달되어 소리로 들을 수 있고, 빛의 진동과 반사로 사물을 볼 수 있듯, 우리가 감상하고 감각하는 것은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 있다. 특별히 그레이코드, 지인이 만드는 작품은 작품이 연주 또는 재생되며 전달되는 소리 에너지가 자체가 공기의 습도와 온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공간에서의 반사음 또는 소리가 재생되는 스피커의 사양 따위의 요소들로 인해 매 순간마다 작품이 결정된다. 

빛의 속도를 넘어, 그 이상의 우주적 사건들을 상상하며 만든 2017-2018년도의 작품은, 고정형 미디어 작업으로 컴퓨터로 재생되면 그만인 것 같지만, 소리를 출력하는 기기의 역할이 중요한 작품이다. 빛의 속도라는 절대적 단위를 인간으로서는 수식 이상으로는 경험할 수 없기에, 인간이 현재 관측 가능하다고 말하는 빅뱅에서부터 지금까지의 465억 광년의 시공을 465초의 작품 길이로 설정하고, 인간의 가청 주파수 내의 선형적 상승과 비선형적 상승의 주파수 움직임을 겹쳐낸 음악적 표현을 활용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는 비록 제한적이지만, 동시에 20Hz부터 20,000Hz까지의 인간의 청각적 감각 영역을 충분히 활용하며 우주적 사건들을 듣는 것을 중요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다.

2023년, 8월 18일부터 10월 8일까지, 아트홀에서의 이 작품은 또 다른 상태로 결정된다. 아트홀이 보유한 JBL 4648A-8 스피커와 JBL 2446H 스피커는 각각 35Hz에서 800Hz 그리고 500Hz에서 20,000Hz까지의 주파수 응답을 내보낸다. 또한 아트홀 전력에 따른 스피커 출력의 강도, 아트홀 공간에서의 반사음이 만드는 배음, 그리고 무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잡음과 같은 환경과 상태는 빛의 속도를 넘어 그 이상을 상상하는 작품의 시점에서 절대적 현재성을 부여한다. 현장이 결정하는 확실성, 지금도 팽창하고 있을, 가늠하기 어려운 우주적 사건에서의 특별한 지점을 만나는 것이다.

+3x10^8m/s, beyond the light velocity (2017-2018) + 35 to 20,000 (2023)
그레이코드, 지인

큐레이터 노트 

그레이코드, 지인은 매질을 타고 흔들리는 진동, 가시광선의 파장, 선형적인 시간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비가시적 현상을 전자음악을 매개로 탐구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지닌 비물질적 속성의 실재를 감각하게 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실험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정형 미디어 작업 〈+3×10^8m/s, 빛의 속도를 넘어〉(2017-2018)를 2채널 오디오 작업 〈35부터 20,000〉(2023)과 더블링해 새로운 구성으로 선보인다.

진공상태에서 빛이 가지는 속도인 ‘3×10^8m/s’은 우주의 모든 에너지와 물질이 가질 수 있는 속도의 최댓값이다. 그레이코드, 지인의 〈+3×10^8m/s, 빛의 속도를 넘어〉는 현존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의 속도 그 너머에 존재할 우주적 현상을 상상하고, 매질을 타고 출렁이는 비가시적 파장이 신체에 닿으며 확장되는 다층적 감각을 탐사한다. 아트선재센터 아트홀에 장착된 스피커의 출력 가능한 주파수 범위를 제목으로 가져온 〈35부터 20,000〉은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특정 헤르츠의 노이즈를 재료 삼아 만든 음악이다. 이 작업은 공간이 가진 물리적 환경을 수용하고 또 그것에 반응하며 〈+3×10^8m/s, 빛의 속도를 넘어〉의 기존 사운드 위로 포개진다. 이때 서로 다른 두 주파수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며 빚어내는 소리의 진동과 음압은 체성 감각으로 이전되어 소리의 현상을 실재화하고, 영상 속 푸른 점들이 촘촘히 모여 이루는 추상의 이미지는 우주의 별처럼 일렁이며 푸른 빛의 파동을 시각화한다.

한편 객석 복도에 걸려 있는 드로잉은 더블링된 두 작업의 개별 악보와 얽힌 시간에 대한 드로잉을 여러 레이어로 겹친 것이다. 그레이코드, 지인에게 악보는 신체에 관한 것이자 태도와 형식에 관한 기록이다. 통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나가는 음계를 교차하는 입체 구조 안에 위치시키고, 음악적 이완과 수축이 신체와 맺는 상호작용을 악보에 드러내면서 작품은 현재를 기록하는 새로운 시간성과 동시성을 제안한다. 이처럼 그레이코드, 지인은 선형적인 시간의 통상적 개념에서 벗어나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 있는 감각의 경계 안에 새로운 시공간을 구축하고, 그것이 전유하는 비가시적 요소의 실재를 더욱 공고히 한다.